마테야 케즈만 용산 굴욕의 잊혀진 스타

Posted by 트럼프h
2015. 2. 18. 13:26 생활정보

 

 

 

 

 

마테야 케즈만 용산 굴욕의 잊혀진 스타

 

 

 

 

 

 

 

 

 

세대교체는 자연스런 흐름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간혹 내가 좋아하던

선수들이 떠나는 모습이 왜그리 슬픈지 모르겠네요. 오늘은 그중 한 선수인

짧았지만 강력했던 임팩트, 케즈만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17세에 데뷔한 마테야 케즈만은 17경기 11골이라는 굉장한 활약으로

세르비야의 최고 유망주로 주목받게 됩니다. 하지만 잦은 이적으로 인해서

제기량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게 되는데요. 이후 파르티잔으로 이적후에

안정을 찾으면서 서서히 폼을 회복하기 시작합니다.

 

 

 

 

 

 

20살의 나이에 기량에 꽃이 활짝 피기 시작하는데요. 32경기 27골이라는

경기등장이면 골이라고 봐도 될정도에 챔스리그에서 굉장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축구인생 최대의 꽃을 활짝 피우게 됩니다. 그리고 psv 아인트호벤으로

이적하면서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자리메김하게 되죠.

 

 

 

 

 

 

지금이야 유망주가 거쳐가는 성장소같은 느낌이라면 2004년까지의 아인트호벤은

챔스리그에서 빅클럽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굉장한 팀이였는데요. 당시 이영표와

박지성을 영입한 히딩크 체제에서 날개를 달게 됩니다. 122경기 105골이라는

거의 1샷 1킬이 어울리는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평가받으며 첼시로 이적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첼시에는 신이였던 드록바와 처진스트라이커로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던

구드욘센에 밀리는 실력을 보여주게 되었는데요. 당시 첼시는 로만체제로 변혁을 도모하고 있던

시기였고 선수를 기다려주지 않는 구단인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죠. 1년만에 타구단으로

타구단으로 저니맨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페네르바체에서는 나름 준수한 활약을 펼쳤음에도 그의 이름에 걸맞지는 않은 활약이라

내리막을 걸으며 사실상 33살이라는 빠른나이에 은퇴를 하게 이릅니다. 너무 빨리 핀 꽃이였을까요?

당시 우리나라 용산에서 찍힌 케즈만의 사진 때문에 용산 굴욕으로도 유명한 케즈만,

지금은 스포츠 에이젼트로서 제2의 인생을 걸어가고 있답니다. 전성기 시절 임팩트가 짧아서 아쉬운

스트라이커 마테야 케즈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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